간만에 요리

저녁, 번개같이 차를 몰고 6마일 떨어진 코스코에서 장을. 홍합은 주말에만 나오는 이유도 있었고, 내일 밥당번인 까닭도 있었다. 게다가 요리에의 욕구마저 꿈틀.

신선한 해산물의 맛은 훼이크가 아니 되므로 제철에, 있을 때 부지런히 먹어줘야지. 특히 (전두환 비자금으로 세웠다는) 한아름마트의 홍합에 비교하면 신선도가 원더걸스와 LPG의 차이임을 깨닫고 나서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홍합은 씻지 않고 바로 넣는다. 헹구고 넣으면 맛의 강도만 떨어뜨린다. 마늘 약간, 양파 약간. 물은 3/5정도 잠기게. 그리고 끓인다. 찍힌 사진으로 계산한 조리시간은 (준비과정 포함) 30분.

마늘은 칼옆으로 뭉개서 넣는다. 오른쪽아래 짓이겨진 모습처럼. 귀찮으면 당근 그냥 넣어도 무방. 


홍합을 까먹으며 (실은 끓이면서) 다음 스텝 스테이크와 파스타 준비.

일단 시간을 오래 먹는 감자부터 시작. 익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감자는 적당히 썰어서 끓인다. 난 껍질까지 먹는 (색도 이쁜) 붉은감자가 좋더라. 익은 감자는 뜨건 물 버리고 찬물에 담가 식힌다. 찬물에 몇 번 헹군 뒤 손으로 소금간하며 범벅을 만든다. 우유를 넣으며 좀 더 크리미하게 점도 조절. 저정도 감자에 넣는 우유는 잘해야 한두컵이니 조금씩 넣을것. 조리시간 50분.

물은 무리해서 넣지 않는다. 요리하다 정말 귀찮은게 중간에 끓어 넘친 물 치우기 아닌가.


다음 파스타. 여기서 슬슬 손이 바빠지기 시작. 파스타 끓이는 데엔 넓고 깊은 팬이 최고다. 스파게티 면이 가로(!)로 들어가기 때문에 끓여야 할 물의 양도 적고 손도 덜 간다. 턱이 낮으니까 면발 확인도 편리.

파스타 끓이는 물은 소금으로 간을, 기름으로 면발이 들러붙지/마르지 않게 한다. 기름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기름이 아무래도 좋다. 맛에 상당히 둔감한 나도 올리브기름은 차이를 느낄 정도이니.

아래 사진에서 실은 브로콜리를 살짝 데쳐내고 나서 기름을 넣었어야 했는데 까먹었다.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서 안 돌리고 하면 이렇게 자잘한 실수가 이어지기 마련.


실은 파스타 물을 끓이면서 스테이크를 먼저 시작했다. 소금후추로 간하고 센불에 지져서 육즙이 못 도망가게 막아버림. 하나 하는데 큰 오븐 돌리는게 귀찮고 낭비인 듯 싶어서 작은 토스터 오븐에 넣고 지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파스타에 정신이 빼앗겨 미디움레어를 지나 미디움에서 꺼냄. ㅠ_ㅠ 아흑, 망설이다 산 뉴욕스테이크인데. 남은 네 덩이는 정성으로 꾸워야지. 조리시간 30분.

굽는 시간은 예열된 화씨 400도 오븐에서 (이후 시간은 천자만별) 대략 25분정도였는데 (우리집 오븐 기준) 이게 영 맞추기 쉽잖아서 1) 고기에 찌르는 온도계 혹은 2) 제빵하듯 칼같은 타이밍이 필요. 온도계 쓰면 실패하지 않는다는데 내가 과연 살른지는 모르겠다.

양쪽에 소금후추 비벼 간한 다음 앞뒤옆 지져서 육즙 밀봉. 오븐에 굽는 사진은 바빠서 생략. 


익은 파스타를 꺼내고 버터에 마늘과 양파 지지기. 기름으로 할까 하다가 해물파스타라면 왠지 버터가 어울릴 것 같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이 시키는 대로... 마늘양파를 살짝 볶은 뒤 익힌 아스파라거스와 페스토 소스 (좀 덜 신선해서 색이 구리다), 그리고 흰포도주를 살짝 넣는다. 원래 살짝 넣어야 하는데 사진찍다 실수로 벌컥 부어버렸다. 줴길 -_-. 조리시간은 20분 (파스타) + 20분.

버터, 10초, 마늘, 30초, 양파, 2분쯤, 아스파라거스와 페스토 (색깔이... 색깔이...), 흰포도주 (저렇게 말고 살살 부으세요)

여기다가 파스타를 넣고 나서 홍합 국물을 붓는다 (찜통이 무거워서 사진 못찍음). 브로콜리도 넣고 비비면서 파마잔 치즈를 툴툴 뿌려준다. 소금간도 해주면 좋은데 까먹었음. 먹으면서 해도 되는 거지 뭐. 접시에 담아낸 위에 홍합을 얹고 파마잔 치즈 툭툭 뿌려서 마무리.


잠시 양파와 칼질에 대해서.

부엌에서 가장 자주 썰리는 대상은 아무래도 양파가 아닐까 싶다. 여러 방법 가운데 손이 젤 많이 가는 (고로 시간이 젤 걸리는) 작살내기를 살펴보자. 양파는 머리끝 뎅강, 세로 반토막, 바깥껍질 벗기기 (뿌리부분은 남긴다) 순서로 준비한다. 다음 아래 사진처럼 수직칼집, 수평칼집, 세로로 자르기 순으로 잘라낸다. 익숙해지면 1분정도면 (비상시엔 30초) 양파 하나를 작살낼 수 있다.

요리에 있어서 속도결정단계(=가장 느린 과정)을 파악해 먼저 시작하기와 각 단계별로 필요 이상의 시간 허비를 줄이기란 효율적 요리뿐 아니라 맛과 재미까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면이다. 고로 무얼 어떻게 만들 건지에 대한 이해와 조리도구에 대한 숙련도는 가령 이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와 타자/사진편집 숙련도에 비유할 수 있겠다.

각설하고 양파 작살내는 순서도:

뿌리방향으로 세로, 가로, 그리고 수직으로 마무리.

처음 홍합부터 한시간 반이 지나고 드뎌 준비끝. 허겁지겁 찍고 먹느라 포도주도 안 따랐지, 파스타 안 찍었지... 파스타는 프리젠테이션 모드로 잘 만들어 놓고 나선 사진없이 그냥 먹었다. 아, 포도주는 전부터 궁금했던 워싱턴주 왈라왈라산 Red Table Wine (9불). 술술 잘 넘어가는 부드럽고 친근감(?)있는 맛.


접시위의 치즈는 Gouda. 덥힌 빵을 설겆이 끝내고 기억해낸 것과 미디움으로 된 스테이크 말고는 괜찮은 저녁. 왼쪽 파란 그릇은 홍합, 오른쪽은 파스타. 찬조출연 빨간 바구니와 감무더기.

아 배부르다.

by 푸르니 | 2007/11/03 19:00 | 음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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